제목: Day-20.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
분류: 목삶
이름: 꾸미


등록일: 2008-05-05 08:15
조회수: 1909 / 추천수: 428


20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5:18).

관계들은 항상 회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삶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불화나 상처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 보다는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원하신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계회복의 사역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고후5:18). 그래서 신약의 상당 부분이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할애되어 있다. 바울은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를 통해 배운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의 사랑이 너희의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다면, 그리고 성령님과 교통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너희에게 의미가 있다면, 서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영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친구가 되어라”(빌2:1~2, Msg)고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우리의 능력이 영적인 성숙의 척도라고 가르쳤다(롬15:5, Msg).

그리스도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셨기에(요13:35). 깨어진 관계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당파로 나누어지고, 서로 고소까지 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전6:5)라고 썼다. 그는 교회 안에 그 누구도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또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고 말했다.

만약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알려지고 싶다면 중재하는 법을 배우라.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평화로운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다. 이들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중재자의 위치가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삶의 두번째 목적이 서로 사랑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화평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다.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화평케 한다는 것은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피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숨기고,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겁한 자의 모습이다. 평화의 왕, 예수님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때때로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셨다. 때로 우리는 갈등을 피해야 하고, 또한 때때로 갈등을 만들어야 하며, 때로는 그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계속적인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한 화평케 한다는 것이 양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양보하고,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두는 것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많은 문제들 앞에서 악한 반대자들과 대면하여 물러서기를 거부하셨다.



관계를 회복하는 법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부르셨다”(고후5:18, Msg). 관계 회복을 위한 일곱가지 성경적인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야기 하라

하나님과 먼저 그 문제에 대해 의논하라. 친구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거나, 우리의 도움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관계들을 놓고 더 기도한다면, 분명 그 관계들은 더 원만해질 것이다. 다윗이 시편을 통해 그랬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라. 하나님께 낙담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하라. 그분에게 울부짖으라, 그분은 우리의 분노, 상처, 불안 등의 감정에 대해 놀라거나 당황해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야기 하라.

대부분의 갈등은 필요가 충족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데 그 필요 가운데는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친구나 배우자, 상사, 혹은 가족 가운데 그 누군가가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실망과 괴로움을 자초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없다.

사도 야고보는 대부분의 갈등이 기도부족으로 생긴다고 지적했다. “너희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1~2).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화를 낸다.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왜 먼저 오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항상 먼저 다가가라

우리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상관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대하신다. 상대방이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라. 깨어진 관계의 회복은 매우 중요해서, 예수님은 이를 예배보다 우선순위에 두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예불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관계가 왜곡되고 깨어지면 바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화목의 자리를 마련하라. 미루거나 핑계를 대거나 “언젠가는 해결할게”라고 약속하지 말라. 가능한 한 빨리 얼굴을 맞대고 만날 계획을 잡으라. 뒤로 미루면 분노만 깊어지고 문제가 더 심각해질 뿐이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곪는다. 재빠르게 행동하면 우리의 영적인 손실도 적어진다. 성경은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우리를 비참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도의 응답을 막는다고 말한다(벧전3:7, 잠28:9). 때문에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욥5:2, 18:4)라고 마한 것이다. 화목을 위한 만남의 성공 여부는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데 잇다. 두 당사자가 피곤하거나, 마음이 급하거나, 누군가의 방해를 받을 만한 시간에는 만나지 말라. 만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두 사람이 모두 최상의 상태에 있을 때다.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라

입보다는 귀를 더 많이 사용하라.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기 전에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를 먼저 들어보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서로의 일들도 돌아보라”(빌2:4, TEV)고 충고 했다. ‘돌아보다’라는 표현의 그리스어는 스코포스(skopos)다. 이 단어는 망원경(relescope) 그리고 현미경(microscope)의 어원으로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다. 사실보다는 그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라. 해결이 아닌 공감으로 시작하라.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로 충고하지 말라.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라. 그래서 그들이 방어하지 않고 감정의 짐을 덜게 하라.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한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라. 감정이 항상 진실되거나 논리적이지는 못하다. 다윗이 “내 마음이 슬프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도 내가 어리석은 탓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 앞에서 마치 짐승과 같았습니다”(시73:21~22, 쉬운성경)라고 고백한 것처럼 사실 분노는 우리를 어리석은 방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받으면 짐승처럼 행동한다.

이와는 반대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인내는 자혜에서 나오고 지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데서 나온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나는 당신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당신은 나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배려해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자”(롬15:2, LB). 다른 사람의 분노를 인내하며 들어주는 것은 희생이다. 특히나 그 분노가 근거가 없는 것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 어떤 희생도 갈보리 언덕의 희생을 따라갈 수 없다.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 사랑으로 인내하셨던 그 분노와 모욕을 기억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시고, 성경에 ‘주님을 모욕한 사람들의 모욕이 제게 임하였습니다’라고 기록된 대로 사셨습니다”(롬15:3, 쉬운성경).



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하라

만일 당신이 진지하게 관계의 회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우선 자신의 실수나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것이 상황을 더 명확하게 보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우리는 모두 자기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는 당사자와 만나기 전에 제 삼자에게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달하고 부탁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쭤보아야 한다. ‘내가 문제인가? 내가 비현실적이고 둔한가? 혹은 내가 너무 예민한가?’ 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28).

고백은 화해의 아주 강력한 도구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때로는 본래의 문제보다 더 큰 상처를 낳는다. 우리가 스스로의 실수를 겸손하게 인정하기 시작한다면 상대방도 화를 풀고 공격을 늦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마도 우리가 방어적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정직하게 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정도의 대가를 치루라.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리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을 쏟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화를 내면서 하고자 하는 말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는 없다. 그렇게 때문에 단어 선택을 현명하게 해야 한다. 부드러운 대답이 언제나 가시 돋친 말보다 낫다.

갈등을 해결하려고 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는 무슨 말을 하느냐 만큼 중요하다. 만일 공격적으로 말은 한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방어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슬기롭다 하고, 사람들은 부드러운 말을 잘 듣는다”(잠 16:21, 쉬운 성경).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

냉전 시대 당시 양측은 너무 파괴적이어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무기를 정해놓았다. 오늘날에도 생화학 무기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핵무기 비축량도 줄이고 있으며, 많은 핵무기를 없애고 있다.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비난, 비하, 비교, 판단, 모욕, 멸시 그리고 빈정대는 태도 등 관계에 있어서의 핵무기들이 들어 있는 무기고를 파괴해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놓았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할 수 있는 한 협력하라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고 말했다. 평화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때로는 그 대가가 우리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자기 중심성일 수도 있다.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며, 상대방의 필요에 호의를 보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롬 12:10, 빌 2:3). 성경은 예수님의 일곱번째 산상수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경쟁이나 싸움이 아닌 협력하는 방법을 보여줄 때에 너희는 복을 받는다. 그때가 바로 너희가 진정 누구이며,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때다”(마 5:9, Msg).



해결이 아닌 화해를 강조하라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동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해결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화해는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그 중요성을 잃고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서로 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도 관계는 다시 세워질 수 있다.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정당하고 솔직한 의견 차이나 이견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그 의견에 반대할 수 있다. 똑 같은 다이아몬드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하나님은 획일이 아닌 연합을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해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논의하고 논쟁해야 할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조화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화해는 그 문제 자체가 아닌 이미 표면에 떠오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과를 읽고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가? 누구와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가? 단 일초도 더 지체하지 말라. 지금 책을 잠시 덮고 그 사람에 대해 하나님과 이야기 하라. 그리고 전화를 들고 그 과정을 시작하라. 이 일곱 가지 단계는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벧전 3:11, NLT)고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하실 것을 그대로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래서 하나님은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당신의 자녀라 부르시는 것이다(마 5:9).

Day 20

내 삶의 목적에 대하여



생각할 점 : 관계들은 항상 회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외울 말씀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

삶으로 떠나는 질문 : 내가 오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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