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day 11 하나님의 좋은 친구되기
분류: 목삶
이름: 꾸미


등록일: 2006-01-17 13:29
조회수: 2287 / 추천수: 613


DAY 11


하나님의 좋은 친구되기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더욱 확실합니다.”

(롬 5:10, 쉬운성경).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는 여러 가지 다른 면이 있다. 하나님

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우리의 주인 되신 주, 심판하시는 분, 구세주,

아버지, 구원자,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이름을 붙일 수 있다(시 95:6, 136:3,

요 13:13, 유 1:4, 요일 3:1, 사 33:22, 47:4, 시 89:26). 하지만 가장 놀라운

사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이상적인 관계를 볼 수 있다. 아담

과 하와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렸다. 의식도, 예식도, 종교도 없었고

단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있었을 뿐이다. 죄의식이나 두려움의

방해 없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였고, 하나님도 그들로

인해 기뻐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임재 가운데서 살도록 만들어졌지만 타락한

이후 그 이상적인 관계가 사라지게 되었고, 구약 시대에는 몇 명만이 하나

님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브라함을

‘친구’라 부르셨고,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으며 욥, 에녹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출 33:11, 17, 대하 20:7,

사 41:8, 약 2:23, 행 13:22, 창 6:8, 욥 29:4). 하지만 그 시대에는

친밀한 우정의 관계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더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상황을 바꾸어놓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을 때 성전에 드리워졌던 사람과 하나님을 분리시켰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이것은 사람이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준비해야 했던 구약의 성직자들과

는 다르게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하나님과의 우정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희생으로만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고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원수에서

친구로 바꾸셨다”(고후 5:18, TEV). 찬송가에 보면 ‘죄짐을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아버지(요일 1:3), 아들(고전 1:9) 그리고 성령(고후 13:13) 모두와 교제하라고

초청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5). 이 구절

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얼굴 정도 아는 것이 아니고 아주 가갑고 서로 신뢰

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결혼식에서 신랑이 들러리를 일컬을

때(요 3:29), 그리고 와의 아주 가깝고 신뢰하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왕궁에서 종들은 왕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신뢰하는

친구들의 모임은 친밀한 교제를 즐기고, 직접 만나며, 비밀 정보를 나눈다.

하나님이 나를 그러한 친한 친구로, 그 모임의 일원으로 두고 싶어하신다

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너희와의 관계에 대해 열정을 가진 하나님이시다”(출 34:14,NLT).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영광과 사랑, 진리 그리고 목저글 깊고 친밀하게

알기를 원하신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친구가 되게 하시려고

온 우주를 계획하셨고, 역사의 모든 부분을 조율하셨으며, 우리 삶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계획하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

으로 만드사 온 당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6-27).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하나님은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렘 9:24)고 말씀하셨다.

전능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완벽한 하나님과 유한하고 죄 많은

사람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렵다. 주종 관계

혹은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 아니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친구로 원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친구였던 성경 속 인물들의 삶을 연구하면 하나님과의

우정에 관한 여섯 가지 비밀을 알 수 있다. 이 장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고

다음 장을 통해서 네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



끊임 없는 대화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것만으로는, 혹은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그 관계를 발전

시킬 수도 없다. 하나님과의 우정은 모든 삶의 경험을 하나님과 나눌 때

이루어 진다.

물론 매일 아침 예배 시간을 정해놓고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스케줄을 한 부분 이상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활동, 모든

대화, 모든 문제 그리고 모든 생각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루 종일

하나님과 같이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다.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일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살전 5:17)은 쇼핑할 때나 운전할 때, 혹은 일을 하거나 하루의 일과를

수행할 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분과 단둘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보여 주셨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한 부분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의식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될 수 있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고전이 「하나님의 임재

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이다. 이는 17세기에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에 의하여 쓰여졌는데 그는 프랑스 수도원의 조리사였다.

그는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과 같은 가장 일상적이고 작은 일도

예배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로 바꿀 줄 알았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과의

친구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하던 일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다. 그것이 먹는 것이든, 목욕하는 것이든, 일을 하는 것이든, 쉬거나 쓰레기

를 버리는 것이든 상관이 없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벗어나야’한다

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모든 순간에 그분의 임재를 연습하는 방법

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렌스 형제는 일상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주 쉽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는 특별한 영적 수련회에

갈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예배의 모습이다. 에덴 동산에서의

예배는 참석해야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태도였다. 아담과

하와는 항상 하나님과 교제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

때문에 지금 있는 장소만큼 하나님께 가까운 곳은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모든 곳에 계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다”

(엡 4:6,NCV).

로렌스 형제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어려운 말을 사용한 긴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할 동안 계속 짧은 대화와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 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기도에 길고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지 말라. 긴 마들은 대부분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라고 로렌스 형제는 권고한다. 집중력 부족의 시대에

단순하게 하라는 이 450년 된 제안은 특히 더 적절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한 가지 방법은 ‘숨 기도(Breath Prayer)'를 하는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몇 세기 동안 이 방법을 사용해왔다. 이것은 한숨에 이야기할 수 있는 짧은

문장 혹은 간단한 구절을 선택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당신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나는 당신의 은혜를 받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의지합니다”

“나는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나는 당신께 속해 있습니다” “당신을 신뢰하도록

도와주십시오”와 같은 문장들이다. “당신은 나의 하나님입니다”와 같은 짧은

성경구절을 사용해도 된다. 가능한한 자주 이 기도를 반복해서 마음에 깊이

박히게 하라. 그렇지만 이러한 기도를 할 때 기도의 동기가 하나님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라.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습관

이다. 마치 음악가들이 쉽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음계를 매일

연습하듯이 우리도 하루 일과 중 각기 다른 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노력해서 연습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훈련과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그 순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상기

시켜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고, 하나님과 모든 것에 대해 대화하며, 모든 곳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나도록 만드는 물건들을 주변에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작은 쪽지에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나를 위해 계신다!’라고

써놓을 수도 있다. 베네딕트 수도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시간의 기도

(the hour prayer)'를 갖기 위해 시간마다 종을 쳤다. 만약 우리가 가진 시계

나 휴대폰에 알람 기능이 있다면 우리도 똑같이 할 수 있다. 물론 가끔은

그분의 임재를 느낄 것이고 또 그렇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 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기분이

좋아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기 위한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항상 계시다는 사실을 계속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배하는 삶의 방식이다.



계속해서 묵상함으로

하나님과 우정을 맺는 두 번째 방법은 하루 종일 그분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묵상이라 하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시고,

무슨 일을 하셨으며 그리고 무슨 말씀을 하셨느지에 대해 묵상할 것을

계속해서 권고한다(시 1:2, 23:4, 143:5, 145:5, 수 1:8).

그분이 무슨 말을 하셨는지 모르고서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분을 알지 못하면 그분을 사랑할 수 없고, 그분의 말씀을 모르면 그분을

알 수 없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삼상 3:21)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 방법을

사용하신다.

하루 종일 성경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읽거나 외운

구절을 하루 동안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그 구절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다.

묵상을 수도승이나 신비론자들이 하는 어렵고 비밀스러운 의식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묵상은 단순히 초점을 맞춰 생각 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고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무제를 놓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을 걱정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생각하면 그것이 묵상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방법을

안다면 묵상하는 방법은 이미 터득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을

걱정거리에서 성경 구절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의 걱정거리는 줄어든다.

욥과 다윗이 하나님의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의 말슴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고, 하루 종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욥은 “나는 내 일용할 양식보다 그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욥 23:12,

NIV)라고 시인했다. 다윗은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 “또 주이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시 77:12)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비밀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우리와 나누

실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비밀을 말씀하셨다. 다니엘,

바울, 제자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하셨다(창 18:17, 단 2:19,

고전 2:7-10).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설교 테이프를 들을 때 듣고 그냥 흘려

보내지 말라. 그 진리를 머리 속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습관을 기르라. 일고

들은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 할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고 넘기 이 삶의

비밀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 25:14).

다음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나머지 네 가지

비밀들에 대해 계속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내일까지 기다리지 마라라.

오늘 하나님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그분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는 연습을 시작하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묵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하실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두가지 모두가 하나님의 친구가

되기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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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1

내 삶의 목적에 대하여



생각할 점: 하나님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외울 말씀: “여호와의 침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삶으로 떠나는 질문: 나는 무엇을 통해 하나님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자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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