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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해서 나는 서로 가슴을 열어 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도 없이 혼자서 살아 왔다. 이것은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고장을 일으킨 때까지의 일이다. 비행기 엔진에 무엇인가 결딴난 것이 있었다. 그런데 기계사도 승객도 없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수선을 나 혼자서 해치워 보려고 마음 먹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생사의 문제였다. 겨우 여드레 동안 마실 물이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첫날 저녁, 나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만 리나 떨어진 모래밭에서 잠이 들 게 되었다. 그것은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뗏목을 타고 있는 파선객보다도 훨씬 더 외로운 신세였다. 그러니 해가 뜰 무렵, 이상한 낮은 목소리를 듣고 잠이 깨었을 적에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냔 말이다. 그 목소리는 이런 말이었다.
"아저씨, 나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응?"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닥닥 일어섰다. 그리고 눈을 비비고 자세히 쳐다보았다. 나를 점잖게 바라보고 있는 어린 친구가 보였다. 여기 있는 그림이 내가 나중에 그린 그의 가장 근사한 초상화다.

물론 내 그림은 모델보다는 훨씬 덜 아름답다. 그러나 이것은 내 탓이 아니다. 여섯 살 적에 이미 어른들 때문에 화가로서의 장래에 낙심하여, 속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보아구렁이밖에 그림이라고는 전혀 배운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 나는 눈이 휘둥그래저 가지고 그 허깨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사람 사는 지방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이 어린 친구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지는 않았다. 몹시 고달프다든가, 시장하다든가, 목이 마르다든가, 무서워서 벌벌 떤다든가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사막 가운데서 길을 잃은 아이다운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이윽고 나느 말문이 열려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그 애는 아주 무슨 중대한 일이기나 한 것처럼 가만히 같은 말을 되뇌었다.
"아저씨,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너무도 이상하니 일을 당했을 때는 그것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지고 죽을 위험을 당하고 있는 자리에서, 그것이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앟는 것이라고 생각은 되었으나, 결국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지리니, 역사니, 산수니, 문법이니 하는 것을 배운 일이 생각나서 약간 성을 내며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아. 나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나는 양을 그려 본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릴 줄 아는 두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려 보였다. 그것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보아구렁이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는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언제 보아구렁이 뱃속에 코끼리 들어 있는 그림 그려 달랬어? 보아구렁이는 아주 위험한 거야. 그리고 코끼리는 아주 거추장스러고, 우리집은 아주 조그마해. 난 꼭 양이 있어야겠어.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그래서 나는 양을 그렸다. 그랬더니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틀렸어! 이건 벌써 병이 잔뜩 들었는데. 다른 걸 하나 그려 줘."
또 그렸다.
"이거봐, 아저씨. 그건 양이 아니고 염소인데. 뿔이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또 다시 그렸다.그러나 그것도 먼젓번 것들 모양으로 퇴박을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더. 난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갖고 싶어."
엔진을 뜯기 시작할 일이 급하기에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 다시 그림을 아무렇게나 끄적거려 놓고 한마디 툭 했다."이건 상자다. 네가 가지고 싶어하는 양은 이 속에 있다."
그러자 천만 뜻밖에도 어린 재판관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게 바로 내가 갖고 싶어한 그림이야. 이 양은 풀을 많이 줘야 할까, 아저씨?"
"왜?"
"우리집은 아주 조그마하니까 말이야."
"이거면 넉넉해, 내가 준 양은 아주 조그마한 거니까."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뭐…… 야! 양이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이 어린 왕자를 알 게 된 것이다.